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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트 바예쩨 5783 '야아코브의 사다리란?'

샬롬, 이번 주의 토라 부분인 파라샤트 바예쩨는 야아코브(야곱)가 파단 아람(밧단 아람)으로 그의 삼촌 라반의 가족에게 여정을 떠나며 시작됩니다.


표면적으로 그가 여정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로 두 가지 설득력 있는 내용이 있는데, 하나는 그의 어머니가 에싸브(에서/에사우)가 축복에 대해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알았던 것과 함께 그가 야아코브를 죽이고 싶어할 것으로 인해서, 리브카(리브가)는 에싸브가 진정할 때까지 야아코브가 잠시 떠나 있기를 원했던 것이 있고, 두 번째로 지난 번 파라샤트인 톨도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쯔학크(이삭/이사악) 또한 그의 아들 야아코브에게 리브카의 가족에게 가서 그곳에서 라반의 집의 소녀와 결혼하라고 명령한 것 때문입니다.


이번 주 파라샤는 28:10에서시작됩니다.

‘야아코브가 브에르 셰바(브엘세바)로부터 나가서 하란으로 향했다. 그가 그 장소에 이르러서 해가 저물어 거기서 묵으려고 그곳의 돌들 중에서 취해 그의 머리맡에 놓고 그곳에 누었다.’


이 짧은 구절은 모든 단어가 의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그 장소에 이르러서 해가 저물어 거기서 묵으려고’


유대인들은 하쉠께서 야아코브가 거룩한 성전이 있을 곳에 도착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셨고, 따라서 야아코브가 그곳에 머물도록 해를 일찍 지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가져다가 머리맡에 두었던 12개의 돌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 이쯔학크를 그 지점에서 결박했던 같은 자리에서의 제단으로부터 취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파라샤에서는 토라의 근본적인 개념이 많이 들어 있는데, 저는 여기서 이번에 한 가지 개념에 집중해 보고 싶습니다.

바로 야아코브가 꿈에서 본 사다리의 의미입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그가 꿈을 꾸었으니, 보라, 사다리가 땅을 향하고 그것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쉠의 천사들이 그것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라, 하쉠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사다리와 그 위에서 오르내리는 천사의 환상에 대해서는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다리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천사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요?’

‘하쉠께서 그 위에 서셨다는 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거기에 대해 유대 현인들은 많은 내용을 공유하는데, 라쉬가 인용했던 미드라쉬 라바는 그 사다리를 이스라엘 땅과 그 국경 너머 땅 사이의 영적인 전환점으로 묘사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땅(이스라엘 땅)에서 그와 동행하던 천사들이 그 땅 밖으로 떠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 땅 바깥에 배치된 천사들이 국경선을 넘은 그와 동행하고자 내려왔다.’


자, 마음을 열어보세요.

족장들에 대한 토라의 교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마아쎄 아보트 씨만 레바님이라는 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족장들에게 일어난 일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징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위대한 이들은 하쉠의 역사적 과정을 실행에 옮긴 원형이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만들었고, 그들의 삶은 유대 민족의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이번 파라샤인 바예쩨에 나오는 사다리를 의미하는 단어는 쑬람으로, 싸멕흐(ס), 라메드(ל), 멤(מ)이라는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파라샤에 대한 공부에서 미드라쉬 라바는 쑬람(סלם)이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동일한 글자를 ‘표징, ‘상징’’이라는 의미의 쎄멜(סמל)이라는 철자로 재배열 할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 간결한 논평에서, 유대 현인들은 야아코브의 꿈이 내포한 여러 수준의 의미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끌어내며, 야아코브의 사다리로부터 우리 삶의 상징을 찾도록 격려합니다.


이제 가장 깊이 마음을 열어보세요.

람밤은 그의 유명한 저서 ‘난처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에서 야아코브의 꿈을 ‘영적 상승을 위한 일종의 안내, 또는 프로그램’으로 간주함을 기록합니다.

그 사다리는 하층부의 영원한 물질적 세계와 상층부의 영원한 영적 세계 사이의 현실의 두 수준 사이를 연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두 현실 모두 다 영원하신 하쉠에 의해 권능으로 다스려지며 그분의 임재가 그 둘에 모두 스며듭니다.

그래서 람밤은 ‘보라, 하쉠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이 우리가 그 사다리를 정확하게 오른다면 정상에 영원히 서 계신 분에게 확실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임을 가르친다고 썼습니다.


사다리를 의미하는 쑬람이라는 단어는 씨나이(시내산)라는 단어와 동일한 게마트리아(히브리어 글자의 숫자값)입니다.

씨나이 산에서 토라를 주실 때, 하늘과 땅은 영적 차원과 물리적 차원 사이의 완벽한 양자 얽힘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토라는 사다리로, 사다리/씨나이의 역학은 인간 현실 내에서 이 두 수준을 연결할 수 있다는 능력을 암시해 줍니다.

우리는 명백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두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은 천사의 본질보다 더 높은, 우리 안에 있는 하쉠의 불꽃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육신의 측면은 일시적입니다.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직무 기술, ‘아보다’라고 부르는 우리 삶의 일로 이 세상에서 하쉠을 섬기는 것은 그 두 수준의 현실을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굳게 박혀’ 서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행동을 통해 하쉠을 섬기며, 세상에 실질적인 좋음과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의 머리는 하늘에 있어야 하며, 우리의 영적 본질을 양육하고 발전시키며 더 높은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사다리는 우리 삶에서 가장 크고 가장 지속적이며, 가장 시급한 도전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물질주의의 존재와 진정한 영적 현실 사이의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쑬람 무짜브 아르짜 베로쇼 마기아 하샤마이마는 문자 그대로 ‘사다리가 땅을 향하고 그것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를 의미합니다.

그 사다리는 여기서 인간과 함께 시작되나, 그 뿌리, 그 기원은 하늘에 있고, 나선형으로 땅으로 내려갑니다.


사람은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그가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그 순서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인간의 임무가 모든 피조물들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힘’에 대한 가르침에서 바알 하탄야는 사람이 밑바닥부터 시작해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쉠의 단일성인 엑하드(하나)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의 성취를 통해 천사들이 그를 통하여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인 것이고, 사람이 하쉠을 붙드는 수준으로 올라가면 모든 창조물이 올라가고, 그가 내려오면 모든 창조물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여전히 더 깊은 점은, 야아코브는 그의 꿈에서 히브리어로 ‘서 있는’이라는 의미의 니짜브로 하쉠께서 그 위에 서 계신 것을 본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명백한 나타남은 무엇이었나요?

분명히 야아코브는 어떤 육체적 의미에서도 하쉠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경험으로, 그는 신성한 임재의 능력과 빛으로 ‘밝혀졌던’ 것입니다.

서 있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많은 히브리어들이 있습니다만, 히브리어로 ‘모든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며, 토라의 신성한 저자(하쉠)는 모든 단어와 글자의 뉘앙스를 ‘방영’해 주는데, 니짜브라는 단어의 형태는 ‘서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마다 루악흐 하코데쉬(성령), 즉 계시되는 하쉠의 예언적 빛의 개념을 전달해 줍니다.


파라샤트 바예라에서 아브라함을 지켜준 천사들도 같은 단어로 묘사되었는데, 따라서 이 구절의 그 표현은 ‘사다리’로 연결된 표현이 바로 하쉠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그의 삶의 세속성의 차원을 그의 삶의 영적 차원, 내면의 영적 차원, 하쉠의 성품, 모든 면에서 하쉠의 면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영적 차원에 연결하는 데 성공할 때, 그 때 그는 자신이 ‘통로’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가 세상에 축복을 가져오는 파이프가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가장 깊게 마음을 열어보세요.

볼로친의 거룩한 라브 하임은 ‘네페쉬 학하임’이라는 책에서 그 위대한 비밀이 다음과 같이 12절에 명시되어 있다고 기록합니다:

‘보라...하쉠의 천사들이 그것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보통 ‘그 안에’라는 단순한 의미를 반영하는 보(בו)가 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쓰인 ‘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그(it) 안에’가 아닌 ‘그(him)안에’를 의미합니다.

야아코브 자신이 사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면서 땅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인간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이 건너는 사다리입니다. 사람을 통해 모든 창조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의미에는 많은 수준들이라는 것이 있는데, 유대 현인의 가장 잘 알려진 가르침 중 하나는 사다리와 천사들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미지를 통해 거룩하고 복되신 분께서 미래 역사의 단계에 대한 상징적 묘사를 야아코브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견뎌야 할 다양한 유배에 관한 비전을 야아코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 천사들은 그의 자녀들을 땅의 통치자들에게 망명자로 예속시킬 ‘왕국들에서 보살펴주는 천사들’을 나타냅니다.


야아코브는 그의 꿈에서 천사장, 즉 바벨론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며 그 뒤를 이어 메디아, 그리스, 에돔의 천사가 오르내리는걸 봅니다.


미드라쉬 페씨크타 데라브 카하나는 거기에 놀라운 통찰력을 더해줍니다.

하쉠께서 야아코브에게 “이제 너가 사다리로 올라가라”라고 하시는데, 야아코브는 올라가기를 두려워하면서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만 하는 것처럼 저도 내려가기 위해 올라갈 수밖에 없을 테니 저는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오르지 않을 겁니다.”

하쉠께서 그와 그의 자녀들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보증하셨음에도 야아코브는 여전히 두려움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이 미드라쉬의 말에 대해서 당신의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열어보세요.

거룩하고 복되신 분께서는 야아코브에게 “만약 너가 나를 믿고 올라갔더라면 너는 유배를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가 올라가지 않고 믿지도 않았으니 너의 자손은 민족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야아코브는 그에 대해 두려움에 떨면서 “세상의 주인이시여, 영원히 그렇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하쉠께서는 야아코브에게 이르메야후(예레미야) 30장의 말처럼 위로하시면서 “결국엔 내가 그들을 구속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예후다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리니 (하쉠의 말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 땅으로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며 그들이 그것을 차지할 것이다.’


이 설교적 가르침은 놀라운 개념을 전달하는데, 하쉠께서 야아코브에게 “나에게 올라오라, 너가 나를 믿었더라면, 믿음의 도약을 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의 뒤를 지키고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다리는 가만히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자도 아니며, 앉아 있기 편한 자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선행과 친절로 하쉠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을 향한 높은 수준에 지속적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당신이 더 높이 가고 있을 때 단계별로 조심스레 천천히 진행해야만 합니다.


때로 당신은 사다리의 다음 단계에서 당신을 방해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멈추기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전에 주저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망설임을 극복하고 진행할 때 높이 오르는 그 성취감은 더 커집니다.


우리 각자는 이 사다리 위에 있고, 우리 각자가 이 사다리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위로 움직이고 때로는 머뭇거리며, 심지어는 발을 헛디뎌 몇 단계 물러서기도 하죠.

그러나 떨어지는 것조차 우리 상승의 일부이며, 유대 현인들은 그것을 ‘올라가기 위한 하강’으로 부릅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든 도전이 궁극적으로 좋은 것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진정으로 내면화 시키는 법을 깨닫고 배울 때, 우리는 그것이 찰나일지라도 사다리 꼭대기에서 우리 위에 서 계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라브 하임 리치만 Rabbi Chaim Richman

번역: 아담 리 (유대교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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