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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트 바에라 5783 '불과 얼음'

샬롬, 이번 주 토라 부분은 슈모트(출애굽기/탈출기) 6:2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파라샤 바에라입니다.

이집트로부터 구속을 가져올 과정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하쉠께서 파르오와 이집트에 내리신 열 가지의 치심 중 일곱 가지가 이번 파라샤에 나옵니다.


파르오를 궁극적으로 하쉠 앞에서 굴복시키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 과정이었는데, 그 중 일곱 번째 치심이었던 우박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초점을 맞출 것은 바로 이 바라드(우박)입니다.

우리는 이미 처음부터 우박의 치심이 이전의 전염병으로 치셨던 것과 구별되는 점을 발견하는데, 거기엔 슈모트 9:13-18에서 볼 수 있듯 비정상적으로 긴 서론이 앞에 따릅니다:


‘하쉠께서 모셰에게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파르오 앞에 서서 그에게 말하라. ‘하쉠, 이브리인들의 엘로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을 보내어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왜냐하면 이번엔 내가 너의 마음과 네 신하들과 네 백성에게 나의 모든 역병을 보내어 온 땅에 나와 같은 자가 없다는 것을 너가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내 손을 보내어 너와 네 백성을 역병으로 쳤으면 너는 그 땅에서 말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너에게 내 힘을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해지기 위함이다. 너가 아직도 내 백성을 짓밟아 그들을 보내지 않고 있으니 보라, 내일 이 맘 때에 내가 매우 맹렬한 우박을 내릴 것이니 그와 같은 것이 미쯔라임에 그가 세워진 날부터 지금까지 있던 적이 없었다."’


질문이 많아집니다.

하쉠께서 ‘이번엔 내가 너의 마음과 네 신하들과 네 백성에게 나의 모든 역병을 보내어...’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박이 ‘나의 모든 역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너의 마음과’라는 표현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

이것이 어떻게든 모든 타격의 모체가 될 역병이란 것일까요?

아니면 혹시 이건 (그랬어야 됐지만) 파르오의 마음을 바꾸고 그를 설득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역병이 될 수 있었다는 걸까요?


그런데 우박의 치심에 대응해 파르오는 사상 처음으로 9:27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번엔 내가 죄지었다. 하쉠은 의로우신 분이고 나와 내 백성은 악인들이다.’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박을 내리기 전에 거룩하고 복되신 분께서는 9:19에서 파르오에게 경고 뿐 아니라 멸망을 피할 방법까지도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지금, 보내라. 너의 가축과 들판에 있는 너의 모든 것을 대피시켜라. 들판에 있으면서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사람과 동물들 모두는 그들 위에 우박이 떨어져 죽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드라쉬 탄후마는 파르오가 그 조언 덕분에 구할 수 있던 말(馬)들 중에서 하쉠께서 구하도록 격려하신 바로 그 말들을 사용해 그것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날 때 그들을 뒤쫓으며 바다로 그들에게 접근했다고 가르쳐줍니다.


마음을 열어보세요.

이것이 하쉠께서 우박의 치심을 불러왔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하쉠께서 모셰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로 너의 손을 뻗어 미쯔라임(이집트)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과 들판의 모든 풀 위에, 미쯔라임 온 땅에 우박이 있게 하라.’’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경험한 우박이 아니었습니다.

24절은 우리에게 ‘우박과 그 우박 속에 번쩍이는 불이 매우 맹렬했으니’라고 말해줍니다.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는 바위처럼 크고 유리처럼 투명한 거대 얼음 덩어리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 우박 폭풍은 천둥 번개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무서운 소리와 함께 이집트인들은 겁에 질려 도망갈 수조차 없었고, 거대한 ‘불얼음덩이’가 쏟아지면서 엄청난 힘으로 땅을 내리치는 충격에 모든 것을 파괴하듯 땅이 흔들리고 그 충격파로 얼음이 갈라질 때 불길이 튀어나와 들판과 도시를 불태웁니다.

우박으로 치심에 대한 힘과 권능은 때로 유대 현인들에게 이집트의 첫째를 죽이는 궁극적인 치심에 비교되었고, 심지어 이것은 열 가지의 치심 모두를 합친 것과 같다고도 비교했는데,

하쉠께서 파르오에게 ‘이번엔 내가 너의 마음에...나의 모든 역병을 보내리라’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우박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의 구성인 얼음의 당혹스러운 조합이었습니다.

땅을 강타했던 우박 덩어리는 9:18에서 알려주듯 ‘그와 같은 것이 미쯔라임에 그가 세워진 날부터 지금까지 있던 적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얼음 속에서 치솟은 불길, 유대 현인들이 ‘기적 중의 기적’으로 부르는 물의 요소 안에서 타오르는 그 불꽃은 모셰가 만났던 불타는 덤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미드라쉬는 그 우박의 현상이 하쉠의 ‘세상을 창조하신 행위’에 해당 한다고 상기 시키기까지 합니다.


베레쉬트(창세기) 1:8에서는 엘로킴께서 그 넓게 펼친 것을 하늘이라고 부르셨음을 말합니다.

하늘/천국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에쉬와 마임,즉 불과 물의 축약형인 ‘샤마임’입니다.

하쉠께선 상반되는 두 세력을 섞어 세상을 만드시고 그것들이 조화롭게 서로를 보완하며 이요브(욥) 25:2에 ‘그가 그의 높은 곳에서 평화를 베푸신다’라고 하듯 공존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기서 마음을 더 깊이 열어 보세요.

그 우박의 독특함은 그것이 창조 과정의 힘을 표현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트힐림(시편) 148:8은 ‘불과 우박, 눈과 증기,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폭풍우’와 같이 많은 원소의 힘이 그 안에 결합되어 있음을 얘기합니다.

‘이번엔 내가 너의 마음과 네 신하들과 네 백성에게 나의 모든 역병을 보내어’, 이것은 우박에 관한 하쉠의 말씀에 대한 한 가지 이해입니다.


모든 사람들, 심지어 파르오 자신도 불과 물은 반대되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르오도 이것이 기적 중의 기적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이라도 파르오는 그것을 깨닫고 그의 마음에 이것이 하쉠으로부터, 다름아닌 그가 모른다고 자랑하던 바로 그 신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식하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쉠께선 의로우신 분이다!


파르오가 인정하는 이 본질적 과정은 우박을 가져오기 직전에 하쉠께서 명시한 계획의 목표와 정확히 일치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너에게 내 힘을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해지기 위함이다.


우박들은 밀도 높게 대기를 채워 모든 탈출 경로가 마치 돌담으로 막히듯 했습니다.

가축 떼를 피난처로 몰아넣으려고 했던 이집트인들은 말 그대로 ‘우박의 성벽’에 부딪혔고, 문들 밖에서 남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쓰러졌으며, 지면에 형성된 두터운 얼음은 불길을 간직한 채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악인은 얼음과 불로 형벌을 받는다’라는 유대 현인들의 난해한 가르침을 상기시키듯,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자들에겐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미드라쉬는 밖에 남아있던 불행한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우박에 맞아 반은 얼어버리고 반은 불에 타버렸는지를 설명하는데, 악인의 미래 형벌에 대한 묘사인 이 난해한 가르침에 대해 토라는 상과 벌은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개념임을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은 미드라쉬의 우박 묘사에서 완벽한 표현을 찾을 수 있는 은유입니다. 하쉠의 신적 설계는 상반되는 두 힘인 불과 얼음을 함께 사용하여 보복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1920년 12월에 미국의 유명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유명한 짧은 시집을 출판했는데, 그 시에서 그는 바로 이 주제와 다르지 않은 것을 고려한 듯 했습니다.

프로스트는 그의 시 제목을 ‘불과 얼음’으로 지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불로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이들은 얼음으로 말한다.

내가 맛본 욕망에서

나는 불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그러나 두 번 멸망해야 한다면,

나는 증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여기니

멸망을 위해선 얼음도 훌륭하며 충분하다.


프로스트는 이 시를 욕망과 증오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대한 은유로 의도했다고 설명합니다.

거기서 불은 타오르는 욕망을, 얼음은 차디찬 증오를 상징합니다.

그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고 그는 얘기합니다.


우박은 들판을 파괴했습니다. 나무가 부러지고 불에 탔죠.

익기 시작한 보리도 줄기가 부러지고 갈렸고 뿌리까지 뽑혔습니다.

들판의 풀들은 모두 뽑혀 불에 탔고 밀과 메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미드라쉬는 그것이 이집트인들이 츄바(회개)를 행하는 경우에 이집트인들이 악조건에서 돌이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쉠의 보복은 그것조차도 그분의 자비와 연민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파르오가 잠깐이나마 명료한 계시를 경험하는 듯 보였지만 궁극적으로 우박은 파르오의 마음을 바꾸거나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대신, 하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곡물들은 우박의 치심 바로 뒤에 이어서 메뚜기들에 의해 죽었고, 메뚜기들은 그렇게 우박이 끝난 후 남아있는 모든 것을 먹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 파라샤트인 에서 그것을 배울 겁니다.


그런 반면 이스라엘 자손이 살던 고쉔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박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에는 이집트인이 고쉔에 있을 경우 마치 표적 암살을 위한 미사일과도 같이 우박이 정확하고 정밀하게 그들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이 고쉔 밖에 있는 경우, 그가 가는 곳마다 마치 아이언돔 같은 시스템이 그를 둘러 그를 완전하게 보호해줍니다.


이 모든 것을 본 파르오는 다시 한번 모셰와 아하론을 부르는데, 이번에는 (그리고 처음으로) 뉘우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반응은 실제로 진지한 듯 했습니다.

‘이번엔 내가 죄지었다. 하쉠은 의로우신 분이고 나와 내 백성은 악인들이다. 하쉠께 간청하라. 엘로킴의 천둥들과 우박이 충분하다. 내가 너희를 보낼 것이니 더 이상 너희가 서 있지 마라.’


이 우박의 치심은 실로 하쉠께서 츄바를 위한 창문을 활짝 열어 파르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에 대한 그분의 크신 연민을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파르오는 하쉠께서 경고 없이도 이집트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음을 이해했기에 하쉠께서 의롭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분께선 동정심으로 주의를 주시면서 준비할 시간을 주셨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모셰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도시를 떠나 기도하려던 모셰는 과도하게 열정으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모셰는 그에게 ‘제가 성을 나갈 때 하쉠께 제 손을 펼 것입니다. 천둥들이 그치고 우박이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니 이는 땅이 하쉠의 것인 줄 당신에게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이 파르오를 위해 기도할 유일한 이유임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이 아직 하쉠 엘로킴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제가 압니다.’


파라샤트 바에라에서 발생하는 모든 타격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지만 미묘한 차이를 둡니다.

그것들이 시작되기 전에, ‘미쯔라임인들은 내가 미쯔라임 위에 내 손을 뻗어 그들 가운데로부터 이스라엘 아들들을 나오게 할 때 내가 하쉠인 줄 알 것이다.’라고 하고 있고,

피의 치심이 시작되기 전에 토라는 ‘이것으로 내가 하쉠인 줄 너가 알리니’라고 하며,

개구리에 관해서는 ‘당신의 말씀처럼 하쉠, 우리의 엘로킴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고 있고,

야수 떼에 관해서는 ‘나 하쉠이 그 땅 안에 있는 줄 너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우박과 관련해서 토라는 ‘온 땅에 나와 같은 자가 없다는 것을 너가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너에게 내 힘을 보여주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해지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보복의 측면은 분명히 그저 잔존적이었음을 나타냅니다.

하쉠의 치심의 진정한 목적은 파르오와 그의 백성들에게 하쉠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쉠이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그의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하는가?’라고 말한 이가 바로 파르오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쉠을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내가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박의 치심은 파르오에게 내린 타격의 정점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패배를 인정하고 ‘하쉠은 의로우신 분이고 나와 내 백성은 악인들이다’라고 선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파르오를 설득하는 데에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역할을 한 이 타격의 특징엔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당신이 마음을 열고 본다면, 그것이 하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자들에게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파르오의 신하들 중 하쉠의 말씀을 두려워한 자는 그의 종들과 그의 가축을 집들로 피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을 받았죠.


그리고 하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은 사람은 ‘들판에 그의 종들과 그의 가축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작물들도 은유적으로 같은 교훈을 주었는데,

‘아마와 보리가 타격을 받았으니 이는 보리는 익었고 아마는 싹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밀과 메밀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늦게 익기 때문이었다.’와 같이 하쉠의 치심 앞에 꼿꼿이 서 있던 식물들은 파괴되었지만 우박 앞에서 몸을 낮추고자 기꺼이 구부러진 흐늘흐늘한 것들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하쉠께선 파르오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분께선 연민과 자비로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초대를 수락하고 자신을 구할 기회를 받아들인다는 건 하쉠의 통치에 대한 복종과 인정을 의미하죠.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나는 하쉠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 모든 건 하쉠을 알고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밀과 메밀처럼 되고 온 세상에 그분과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온 세상에 선포하도록 하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기회를 받아들이는 건 얼마나 큰 영감이 되는 것인가요!

구속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하쉠을 아는 지식입니다.


라브 하임 리치만 Rabbi Chaim Richman

번역: 아담 리 (유대교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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