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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트 슈모트 5783 '구속의 책'

샬롬, 지난 주 우리는 토라의 연간 읽기 주기 중 베레쉬트(창세기), 창조의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샤바트(안식일)에 우리는 슈모트(출애굽기/탈출기)의 첫 부분인 파라샤트 슈모트를 읽으면서 이 책을 시작합니다.


이번 시작 구절은 새로운 현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전환, 즉 개개별로 구성되었던 이스라엘 가족이 인구가 많은 민족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이스라엘 아들들은 매우 매우 번성하여 들끓고 많아지고 강해졌다. 그 땅이 그들로 채워졌다.’


이 책에 대해 위대한 현인 람반은 그것을 ‘구속의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빛은 어둠에서 나올 때에만 감상할 수 있는 법이죠.

그렇게 구속의 책은 암흑의 한 가운데로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이집트로의 유배, 갈루트 미쯔라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요쎄프(요셉)와 그의 형제들과 그 세대 전체는 죽고, 그들의 죽음과 함께 파르오는 이 민족을 파괴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명을 파괴하며 세상에서 하쉠의 임재를 추방하고 구원에 대한 인간의 희망을 파괴하고자 합니다.

갈루트 미쯔라임은 하쉠에 의해 선고된 최초의 유배였으며, 우리는 그것이 개인적, 국가적, 전세계적 유배의 뿌리이자 원형이라는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잘 공부해야 합니다.


이집트로부터의 나옴은 미래의 모든 구속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게울라(구속)의 개념은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가 약속하고 확증했던 대로 모든 인류를 위한 하쉠의 궁극적 계획입니다.

믹하(미가) 예언자를 통한 하쉠의 약속을 우리는 ‘너가 미쯔라임(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들처럼 내가 그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7:15의 구절로 이해합니다.

미래의 구속은 이집트 탈출의 스펙터클보다 훨씬 더 빛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미쯔라임’인 이집트는 문자 그대로 협소함, 즉 ‘수축되는 억압’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의 생명을 질식 시키는 것은 하쉠을 은폐 시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의심으로 마음을 흐리게 하는 건 억제되지 않은 상상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파괴이며, 구원은 이러한 악의 속박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이 되어줍니다.


하쉠의 실재에 대한 나타남은 이 세상에 자유를 불러올 것인데,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닌 온 세상의 인류의 운명은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고 희망하는 인간 조건의 궁극적 완성과 창조주의 지시로 인해 역사적 전진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로는 천천히, 그리고 때로는 눈에 띌 정도로 빠릅니다.

그것은 많은 단계와 많은 오르내림을 특징으로 하는 과정인데,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속박과 고통, 그리고 풀어줌과 자유의 반복적 주기가 특징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이제 요쎄프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일어난다고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나라를 죽음에서 구한 자가 의인 요쎄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새로운 파르오는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언급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는 이 신흥 민족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민족이 ‘신의 섭리’에 대한 권한을 가진 민족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며 깨달음을 가져오고, 하쉠의 지식을 가르치며 모든 인류의 구원의 손길이 닿는 곳에 그것을 가져다 줄 이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파르오의 의사에 맞지 않았기에 그는 법령을 발표합니다:

‘지치고 쇠약해질 고된 노동’이 그것인데,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었고, 미드라쉬가 알려주는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유대인들의 부부 관계를 막아 그들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체적 학대에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심리전을 추가했음에도, 토라는 우리에게 ‘그러나 그들이 그(이스라엘)를 괴롭힐수록 그는 더 많아지고 더 퍼졌다’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유대 남자 아이를 대상으로 죽음의 선고를 내립니다.


11절은 ‘그들이 그들의 부담으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 위에 감독관들을 두었다.’라고 말하는데, 히브리어로는 이러한 작업 감독관을 ‘싸레이 미씸’ 또는 ‘노그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쇼트림’을 마주하는 데, 이들은 장교나 또는 사람들을 감독하는 (경찰과 같은) 담당관을 의미합니다.


자,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누구를 얘기하는 걸까요?

감독관은 이집트인이었지만 그 관리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습니다.

감독관 한 명은 관리 10명의 위, 그리고 관리 한 명은 유대인 10명의 위에 임명합니다.

관리들은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5장의 시작 부분엔 모셰와 아하론(아론)이 처음으로 파르오 앞에 나타나서 ‘내 백성을 보내라’라고 이스라엘의 엘로킴 하쉠께서 한 요구를 전달하는데, 파르오는 거절하면서 ‘하쉠이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그의 소리를 내가 들어야 하는가? 나는 하쉠을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내가 보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부터 이집트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며 벽돌 제조에 필요한 짚을 그들에게 주지 않으면서도 매일 같은 분량을 생산하도록 책임을 지게 합니다.


‘이는 그들이 게을러서다. 그러므로 그들이 ‘우리로 가게 하여 우리 엘로킴께 제사 드리게 하십시오’라고 소리치며 말한다. 그 사람들에게 일을 무겁게 하여 그것을 하게 하라. 그래서 거짓말에 그들이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라.’


그렇게 감독관들과 관리들은 파르오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스스로 짚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백성들은 각자 짚을 찾아 이집트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독관들은 풍년이던 시절처럼 짚을 가져와 할당량을 마치도록 재촉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죠.


이들은 계층 구조대로 이집트 감독관이 관리로 선발된 유대인들 위에 임명되었고, ‘백성의 감시자들’인 쇼프팀, 그리고 관리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책임졌습니다.

관리들은 보통 작업 감독관에게 직접 보고했습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파르오의 감독관들이 그들 위에 둔 이스라엘 아들들의 관리자들이 매를 맞았다. 이르기를, ‘너희는 왜 그제나 어제나 오늘도 이전처럼 벽돌 만드는 너희 정해진 몫을 끝내지 못하느냐?’’

‘이스라엘 아들들의 관리자들이 와서 파르오에게 소리쳤다. 이르기를, ‘어찌하여 당신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이렇게 행하십니까? 짚이 당신의 종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벽돌들을 만들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백성의 죄입니다.’

‘그가 말했다. ‘너희는 게으르고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는 ‘우리로 가게 하여 하쉠께 제사 드리게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이 너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나 할당량의 벽돌은 주어져야 한다.’


이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해 보세요.

사람들이 더 이상 짚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지시가 내려진 후에, 감독관들이 와서 매일 벽돌 생산을 집계했고 할당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을 깊이 열어보세요.

파르오의 감독관들이 이스라엘 위에 임명했던 같은 이스라엘 자손의 관리들이 부족량을 메우려고 애썼고, 그 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 관리들이 구타를 당합니다.


감독관들이 채찍질 하고 때리면서 말한 ‘너희는 왜 그제나 어제나 오늘도 이전처럼 벽돌 만드는 너희 정해진 몫을 끝내지 못하느냐?’라는 말에 관리들은 큰 헌신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서 구타를 감내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구타 당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우리가 맞는 것이 낫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여기서 깊은 무언가에 더 귀를 기울이기 위해 마음을 열어보세요.

우리는 나중에 바미드바르(민수기) 11:16에서 하쉠께서 어떻게 모셰에게 후에 산헤드린으로 알려진 자들을 모으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배우는데, 그분께선 모셰에게 ‘이스라엘 장로들 중 70명을 내게로 모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있는 영으로부터 더해 그들에게 놓을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미드라쉬는 모셰가 누구를 모을지 확신이 없었고 하쉠 앞에서 ‘그 역할을 위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누가 합당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음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하쉠께선 ‘이스라엘 장로 중 너가 아는 백성의 장로들과 관리들이니, 곧 백성을 대신하여 맞으면서 그들의 백성이 고통받음을 보는 것보다 그들 자신에게 고통을 준 그들이 내가 모셰 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신성한 영을 할당해 준 민족의 첫 번째 지도자들이다.’

그들의 자기 희생의 의지와 그들의 형제에 대한 연민과 헌신이 그토록 컸었기에 하쉠께서는 그들이 모셰의 짐을 덜어줄 적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현인들은 우리에게 이 말이 하쉠께서 그들을 모셰와 동등하게 여긴 것임을 얘기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이타적인 헌신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위대함과 신성한 영감을 부여 받음에 합당할 것을 의미함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에 동참함으로 하쉠께선 그들이 신성한 영감과 지도력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구속의 책’은 유배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속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유배의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이런 주기를 이해하는 열쇠는 이르메야후(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는 30:7에서 ‘야아코브에게 환난의 때이지만 그는 그것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예언합니다.

위대한 현인 빌나 가온은 우리에게 이 말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주는데, ‘그는 그것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것이 구원이 고통 자체의 산물로 나타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위기 상황은 우리의 잠재력을 잘 드러내서, 모든 것이 잘 되는 사람의 ‘만족기’에 일반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힘은 휴면 상태에 있다가 역경의 시간이 되서야 표면으로 드러나는데, 우리는 가장 깊은 환난의 시간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집트의 속박과 함께 하쉠께서 이스라엘을 그 깊은 곳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해 낸 이야기는 토라 신앙의 초석이 됩니다.


유대인의 삶에서 날마다 ‘미쯔라임으로부터 나온 것을 기억하라’라는 것이 토라의 계명 중 하나로 간주되는데, 그것은 왜 그럴까요?

슈마(쉐마) 기도에서 그것을 매일 두 번 반복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하쉠께선 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였음을 토라 전반에 걸쳐 계속 상기시키는 걸까요?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손짓하는데, 우리의 진정한 자아,우리의 본질, 그리고 우리의 잠재력은 그 때에 빛을 발하며 유배로부터 구원까지의 여정을 가능하게 하고 힘을 보태 줍니다.


라브 하임 리치만 Rabbi Chaim Richman

번역: 아담 리 (유대교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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