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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트 슈미니 5783 '조심스레 먹기'

샬롬, 하쉠께서는 왜 이스라엘에게 정결한 식사법(코셔)을 지키도록 명하셨을까요?

모든 존재들의 전지전능한 창조주께서 왜 ‘사람들이 먹는 문제’와 같이 하찮게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시는 걸까요?


바이크라(레위기) 9장에서 시작되는 파라샤트 슈미니의 토라 부분은 허용된 음식과 금지된 음식에 관한 많은 규율을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은 성막을 봉헌한 지 여덟째 날인 니싼 월 첫 날 로쉬 호데쉬(초하루)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이날은 신성한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는 슉히나가 성막 위에 내려온 큰 기쁨의 날이자 신성한 섬김의 첫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기쁨 가운데 아하론(아론)의 아들인 나다브와 아비후가 하쉠께서 명하지 않은 제물을 드려 불살라졌죠.


그리고 다른 나머지 부분들은 음식의 법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동물과 새를 음식으로서 먹을 수 있고 먹어서는 안되는지, 어떤 것이 정결하고 어떤 것이 불결한지, 어떤 것이 혐오스럽고 어떤 것이 더러운 것을 전염시키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복잡한 주제죠. 많은 법과 세부 사항들이 있습니다.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표징은 무엇이며 허용된 동물에 대해선 어떤 부분을 먹을 수 있고 어떤 부분이 안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어떻게 도살되고 준비되어야 하며 어떤 혼합이 금지될까요?

그리고 그렇다면 하쉠께선 왜 어떤 것은 음식으로 허용하고 어떤 것은 금지하신다는 말입니까?


어떤 이들은 그 금지된 음식들이 ‘건강에 해롭기 때문’으로 얘기합니다.

람밤의 ‘난처한 자를 위한 안내서’에도 토라가 이스라엘에게 금지한 모든 것이 신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본질적으로 해롭고 영양 공급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며 말이죠.


또한 다른 유대 현인들도 식용이 금지된 동물의 본질에 대해 성찰할 때 도덕적, 윤리적 교훈과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예를 들어, 허용되는 동물, 즉 되새김질을 하며 발굽이 갈라진 동물과 정결한 새와 물고기들은 수동적인 성격이며, 그 반면에 불결한 것들은 일반적으로 포식자라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요인은 진실을 반영하며 퍼즐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또한 이러한 법들로부터 하쉠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정결한 식사법은 ‘법/법령’ 등으로 번역되는 혹(חוק), 그리고 복수형인 후킴(חוקים) 등으로 알려진 계명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계명은 ‘붉은 암송아지’라는 탁월한 계명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지능 범위를 넘는 하쉠께서 내린 신성한 법이라는 설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쉠께서 그것들만 먹을 것을 명령하셨다면 그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육체적 건강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카슈루트(코셔법)는 하쉠의 뜻을 나타내는 ‘영적 식단’이기에 그 근거들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드라쉬 탄후마가 이제 우리의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우리가 이 동물이나 저 동물을 먹더라도 하쉠께선 뭘 신경 쓰신다는 걸까요? 그분께선 우리가 음식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것이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나요?’

미드라쉬의 현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모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보상이 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마음을 한 번 열어보세요.

위대한 라브 쉼숀 라파엘 허쉬는 그의 저서 ‘유대교에 관한 19개의 편지’에서 후킴에 대한 다른 정의를 내놓습니다.

그는 ‘이것이 정의의 법이며 사람에게 종속된 창조물에 대한 공의의 선언이다’라고 썼는데, 곧 ‘땅과 식물과 동물을 향한 정의, 또는 그것들이 당신의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이라는 당신 자신에 동화된 경우’에 대한 정의라고 썼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 대답은 ‘호레브(시나이 산)’라는 제목의 유대법의 철학에 대한 그의 고전적인 설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라브 허쉬는 그곳에서 ‘불결함’인 툼아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부정한 음식과 관련된 이 불결함이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사명을 상징하는 성전이 거룩해질 필요가 있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역 외부와 그 아래에 가라앉은 모든 것이 불결함으로 더럽혀질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음식은 불결하며, 당신의 몸, 당신의 마음, 당신의 영혼이라는 ‘당신 자신’이라는 성전에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후킴에 대한 정의로 한 ‘그것들이 당신의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이라는 당신 자신에 동화된 경우’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먹으면 당신의 시스템에 흡수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가장 깊이 마음을 열어보세요.

라브 허쉬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비록 당신이 영양분을 공급받을지라도 당신이 이것들(불결한 음식들)을 먹을 때 당신 안에서 동물적 본능이 더욱 강하게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몸은 영의 도구로서는 더욱 무뎌지게 될 것이다.’

(불결한 음식들을 먹는다면) 당신의 마음은 거룩해지는 대신, 거룩함만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동물과 같은 모든 것 위에 있는 당신의 존재라는 거룩한 의미 대신에 당신의 마음은 동물적인 것에 끌리게 되고 더욱 무감각해지며, 무뎌지게 된다.’

‘당신의 영은 이제 더 치열한 전투에 직면하며, 싸울 준비는 덜 되어있다.’


토라는 반복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이 음식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니’, ‘그것들로 자신을 부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그것들을 통해 부정할 것이니’.

불결하게 된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쉠에게 매달리기 위해 노력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을 위한 하쉠의 부르심은 우리 삶의 모든 징후를 지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신성한 자아의 성전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보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도 하쉠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동물적 본성으로 자신의 영과 마음을 무너뜨리는 힘을 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존재에 이질적인 모든 것은 토라에 의해 ‘혐오스러운 것’으로 불립니다.


마음을 더 깊이 열어보세요.

다시 말해서, 라브 허쉬는 문자 그대로 ‘당신이 먹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부정한 것)들을 먹으면 우울해지죠.


‘먹는 것’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생각 없는 활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건한 영의 수호자로서 ‘먹는’ 것입니다.

제대로 먹고 제대로 몸을 유지하는 것은 거룩한 성전에 제물을 가져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물을 성전 건물 바깥쪽에서 하쉠께 드리듯, 하쉠의 뜻에 따라 적절히 먹음으로 우리 자신의 ‘개인적 성전’이라는 우리의 몸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성전이 파괴된 이후, 현재 우리가 제단에 제물을 바칠 수 없는 동안에 식사를 하는 사람의 ‘식탁’이 거룩한 성전의 제단처럼 그를 속죄해 준다는 유대 현인들의 가르침으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외부에서의 신성한 섬김과 내부에서의 신성한 섬김이 있습니다.


토라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간청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에 ‘적합한 상태’를 유지하는 책임 있는 선택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매우 다르게 전개됩니다.

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들어야 하나요?

그런데 그것은 모든 것을 ‘나의 전부’로 보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사이의 차이입니다.

‘나는 중심이고 모든 것이 나의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 모든 것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먹는 것은 매우 영적이고 강력한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함과 반대로 인격의 완전한 붕괴를 위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의 궁극적 복종일 수도 있고, 궁극적인 자기 만족, 이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모든 수준’에는 숨겨진 신성한 불꽃과 영적 본질, 그리고 창조의 영적 수준이 포함되어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먹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거룩함의 계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먹고, 하쉠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으로 인정하며 우리가 먹는 허용된 음식의 존재 안에서 신성한 불꽃을 고양시킨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먹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먹기 전과 후에 하쉠께 감사함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먹을 때 우리는 거룩한 본질을 덮고 있는 은폐의 층을 벗겨낼 수 있으며, 허용된 음식의 육체적인 면이 우리의 몸을 살찌게 하듯 영적인 면이 우리의 영을 살찌웁니다.

그리고 토라는 금지된 음식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본질을 부패시키며 우리를 마비시키고, 어리석게 만들며 영적 기반을 잃어버리게 하고, 말 그대로 ‘마음을 흐리고 무뎌지게’ 하며, 우리의 영과 하쉠 사이에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번 파라샤의 끝을 향한 부분은 매우 독특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쉠, 너희 엘로킴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 거룩해야 한다. 이는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떼로 부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 엘로킴이 되려고 미쯔라임 땅에서 너희를 올라오게 한 하쉠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해야 한다.’

이 두 구절에선 하쉠의 성화와 거룩함의 개념, 그리고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열망하라고 명하신 것이 다섯 번 언급됩니다.


그마라(탈무드) 요마 편에서 우리는 다음을 배울 수 있는데,

라비 이슈마엘의 학당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을 어리석게 하니, 바이크라 11:43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그것들로 너희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너희가 그것들로 부정하게 되지 말아야 한다.’


언어유희적으로, 유대 현인들은 “그 단어를 ‘너희가 부정하게 될 것이다’라는 베니트메템으로 읽지 말고 ‘너희가 어리석게 되리라’라는 베니탐템으로 읽어보아라”라고 가르칩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를 조금 더럽히면 크게 더럽혀질 것이요, 그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더럽히면 다음 세상에서도 더럽혀지리라.”


그렇다면 ‘너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 거룩해야 한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작은 노력을 기울이면 하늘의 도움을 받아 크게 거룩해지며, 그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면 다음 세상에서도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라브 하임 리치만 Rabbi Chaim Richman

번역: 아담 리 (유대교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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