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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트 바미드바르 5783 '토라의 선물' - 샤부오트

샬롬, 이번 안식일에는 주간 토라 읽기 주기 중 네 번째 책인 ‘쎄페르 바미드바르(민수기)’를 시작하며, 그 첫 번째는 파라샤트 바미드바르입니다.

그것은 하쉠께서 모셰에게 각 지파별로 이스라엘 아들들의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그들의 진영에 따라서 민족을 구성하도록 명령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비밀은 이것이 단순히 ‘숫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번 파라샤에서 이스라엘 아들들을 세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들에 대한 계산’이라는 영적인 셈을 의미합니다.

각각의 사람은 고유하며, 신성한 계획으로 수행해야 할 특정한 역할들이 있죠.

따라서 이 인구 조사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람의 개성과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인구 조사를 지금 접하게 되며, 특히 이번 주에 보게 되는 것일까요?

이번에 다가오는 날처럼, 이번 파라샤는 일반적으로 시나이 산에서 토라를 주신 큰 명절 샤부오트가 다가오는 씨반 월의 초하루 ‘로쉬 호데쉬’에 다다를 때 읽게 됩니다.


샤부오트(오순절)는 시나이 산에서 토라를 주신 매우 특별한 명절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이자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인 토라는 우리가 하쉠과 연결되고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해주며,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 삶에 거룩함을 불러오게 하는데, 그래서 이 파라샤의 시기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며, 이 인구 조사의 생각과 이번 파라샤의 다른 사상들은 바미드바르와 샤부오트 명절의 연관성 사이에 큰 영적 의미를 지닌 연결을 나타내 줍니다.


항상 기쁨과 열정으로 토라를 공부하고,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쉠과 연결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거룩한 바알 쉠 토브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숫자의 셈은 시나이 산에서의 토라를 주심을 위한 준비임을 가르칩니다.

토라는 단순히 율법과 계명의 집합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영적 여정을 위한 청사진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따르는 고유 경로들이 있다지만, 토라는 각기 고유한 개인들이 그 경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침과 방향을 제공해 주죠.


그러니 여기서 마음을 열어보세요.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각 지파는 개별적으로 계산되었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중요하며 가치가 있기에 각 사람도 개별적으로 계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는 과정을 통해서 각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자각으로 올려졌고, 하쉠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미드라쉬에 반영되어 있는데, 그것은 하쉠께서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셨을 때 ‘단체’로서가 아니라 ‘개개인’으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더 열어보세요. 이것은 정말 놀라운 개념입니다.

시나이 산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고,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영도 그곳에 있었다고 배웁니다) 각자 자신의 이해의 수준과 영적 능력에 따라 하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토라는 얼굴 없는 무작위의 대중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과 사명에 따라 이스라엘의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토라의 틀 안에서 각 사람은 자신의 소명과 따라야 할 개별적인 경로들이 있고, 각 사람은 그 오케스트라에서 자신의 음을 연주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 자신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하쉠을 섬기도록 부름 받습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하쉠을 섬긴다는 강렬한 개인적 경험이라는 토라를 통해 그들의 개성을 표현해 나갑니다.


그런데 사실 토라는 각 개인에게 주어진 선물이기도 하면서 샤부오트의 또 다른 핵심 주제로 ‘일치/연합/조화’라는 개념을 가지기도 합니다.

유대 민족이 토라를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 섰을 때 그들은 한 마음 한 민족으로 ‘연합’되었습니다.

각 지파와 개인은 비록 ‘따로’ 세어졌지만, 그들의 연합은 토라를 주심에 있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이분법은 이번 파라샤에서 배우는 이스라엘 지파의 광야에서의 진영 중 그 두드러진 특징인 ‘깃발’의 개념에서 아름답게 설명됩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는 고유한 깃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깃발들은 유대 민족이 토라를 받기 위해 필요한 각 지파의 다양한 속성과 고유한 영적 특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미드라쉬에 따르면, 각 깃발들은 지파의 특성을 나타내는 고유한 상징들로 장식되었는데, 그것은 예를 들면, 예후다(유다) 지파의 깃발에는 힘과 지도력을 상징하는 사자가 장식되어 있었고, 르우벤 지파의 깃발은 회개의 성품을 나타내 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깃발은 하쉠의 빛을 세상에 가져오는 사명에서 수행할 고유한 역할들과 토라의 계시로 이어지는 각자의 영적 경로에 대한 표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깃발들은 또한 ‘연합’의 표시로, 이 서로 다른 깃발들 아래 함께 뭉침으로 유대 민족은 ‘개인차’를 극복하고 시나이 산에서 토라를 받는 공동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지파는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자 함께 뭉쳤고, 이 연합의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 성막 주위로 특정하고 신성하게 정해진 순서로 배열됩니다.

방위의 네 구역처럼, 그들이 성막 주위로 그들의 깃발 아래 진을 치는 순서는 토라의 계시로 이어지는 다른 경로들을 반영하는 영적 지도를 만들어 내었고, 그 길을 따름으로 그들은 시나이 산에서 위대한 계시의 순간에 대해 스스로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성막은 이 세상에서 하쉠의 임재가 나타난 곳이었고, 그 주위로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의 모든 측면이 하쉠과 연합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바알 쉠 토브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각 개인이 소유한 12가지의 다른 특성, 또는 속성을 나타낸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것들은 지성감정행동입니다.

예후다, 이싹하르(잇사갈), 즈불룬(스불론), 르우벤 이 처음 네 지파들은 지성의 특성을 나타내고, 다음의 네 지파 쉼온(시므온), 가드(갓), 에프라임, 므나셰는 감정적 특성을, 그리고 마지막 네 지파 빈야민(베냐민), 단, 아쉐르(아셀), 나프탈리는 행동 지향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거룩한 바알 쉠 토브는 각 사람이 12가지 특성의 고유한 조합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계발함으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깊은 방식으로 마음을 열어보세요.

그 깊은 이해는, 토라를 주었다는 것이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전 우주적 사건이기 때문에 모든 영들이 시나이 산에서의 계시에 참석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산기슭에 서 있던 이스라엘 영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모든 영들도 영적 의미로 시나이 산에 있었으며, 하쉠으로부터 직접 토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훨씬 더 깊어집니다.


유대 달력은 시간이 ‘선형적 진행’이 아니라 ‘순환의 과정’임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유대 음력 주기가 가진 비밀입니다.

새로운 매 달은 영적 갱신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제공해 주어서, 토라 파라샤들의 매주 읽기와 명절의 연간 주기를 포함하는 주기 자체가 이스라엘을 시나이 산에서의 원래의 핵심 계시로 돌아가게 해주고 신성함과 연결될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시나이 산의 계시와 토라의 주심은 매년 완전히 새롭게 모든 세대에 ‘처음으로’ 일어나고 있기에, 시나이 산의 계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각 세대는 그 계시를 다시 경험하고 토라를 새롭게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토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심화시키고 하쉠과의 관계를 심화 시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줍니다.


토라의 주심이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지금 거기에 있을 수 있고 올바로 될 수 있습니다. 시나이 산 계시의 영속성이란 것은 영적인 갱신과 성장이 우리에게 항상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토라를 공부하며 하쉠과 신실하게 연결되려고 시도할 때마다, 우리는 신성한 지혜와 통찰력을 받고 배경 지식 수준에 관계 없이 시나이 산에서 원래의 계시가 번쩍임을 경험합니다.

토라 자체는 영원불변 하지만, 각 세대마다 토라를 새롭게 경험하고 베푸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각 개인의 이해와 해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심화될 수 있습니다.

하쉠과의 이 개인적인 연결은 우리가 시나이 산 계시의 영속성을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입니다.


거룩한 바알 쉠 토브는 토라가 단순히 ‘지적 추구용’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쉠의 불꽃에 연결하고, 우리의 영혼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토라의 본질을 일련의 ‘율법과 계명’으로 보는 이들과는 반대로,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토라가 끊임없이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를 드러내는 살아 숨쉬는 실체임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라가 ‘과거’에 뿌리를 단단히 심었지만 그 가지가 ‘미래’를 향해 뻗어 있는 나무에 비유되는 이유입니다.

이 개념은 제자가 스승에게 마지막까지 제기한 모든 질문이 이미 시나이 산에서 질의응답 되었다는 미드라쉬의 설명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더 깊이 열어보세요.

토라를 주심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는, 그 증여의 장소로 ‘광야’를 뜻하는 미드바르를 택하셨던 하쉠의 선택에 있습니다.


바미드바르 21:18의 내용처럼, 토라는 ‘광야의 선물(마타나)’입니다.

이번 주 파라샤의 이름인 ‘바미드바르’는 ‘광야에서’를 의미하는데, 광야는 공허하고 황폐한 곳으로, 생명도 공급도 없는 곳이죠.

그러나 바로 그 척박하고 공허한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토라를 받고 거룩한 민족이 될 사명을 받았습니다.


광야는 영적 준비의 시간을 나타내며, 거기서 우리는 자아를 벗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한계와 약점에 직면하여 오직 하쉠만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과 물을 얻기 위해 하쉠을 의지해야 했고, 하쉠께서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만 했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길을 잃고 외롭다고 느끼는 어려운 시기를 종종 겪어야만 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쉠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광야는 또한 모든 사람의 영적 여정을 대표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직면하는 도전과 장애물, 그리고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의심과 두려움에 대한 은유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알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쉠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쉠을 신뢰하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기 위해 삶의 광야를 탐색하는 법을 배움으로서만 오로지 각자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고유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당신의 삶의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마음을 열어보세요.

광야는 ‘시험’과 ‘고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쉠께서 선물을 위해 선택한 장소로서 토라를 받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며, 그곳은 위대한 영적 성장과 계시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하쉠과 더 깊은 방법으로 연결되는 법을 배우고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광야를 통과하면서 이러한 더 깊은 연결을 구축하고 그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의 잠재력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기회가 생깁니다.


토라의 비밀의 수준에서, 광야는 ‘제한된 의식’으로 알려진 영적인 소형화, ‘카트누트’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사람이 공허함을 느끼고 하쉠과 단절되어 영적인 삶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지만, 그렇기에 사람이 토라를 받고 더 높은 수준의 영적 의식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카트누트의 상태에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에서 때때로 공허함을 느끼거나 하쉠과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토라를 받고 더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승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우리가 하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바로 이 ‘작은 순간’입니다.


‘자아의 무효화’를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고유의 잠재력과 연결되고 우리 자신을 하쉠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토라에서 우리의 인도와 방향을 찾고, 그 신성한 계획에서 우리가 하는 특별한 역할을 깨달으며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축복 받기를 바랍니다.


라브 하임 리치만 Rabbi Chaim Richman

번역: 아담 리 (유대교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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