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샤트 에케브 ‘번영의 유혹’

샬롬, 이번 주의 토라 강의는 드바림(신명기) 7:12에서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파라샤 에케브입니다.


이번 주 토라 부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 땅에 대한 놀라운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너의 엘로킴 하쉠께서 너를 좋은 땅으로 데려가시니, 계곡물과 샘들과 지하수가 골짜기와 산에서 나오는 땅,’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의 땅, 올리브 기름과 꿀의 땅’

‘너가 그곳에서 빵을 먹기에 모자람이 없고 그곳에서 너가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을 곳이며, 그곳의 돌들이 철이고 그곳의 산들이 구리를 캘 수 있는 땅’


모셰의 설명은 그렇게 감사함과 감탄의 감정을 전하며

열망과 두려움, 그리고 어떤 높은 연민과 시적인 아이러니도 불러 일으킵니다.

그의 말들에서 우리는 그가 신성한 계획으로 인해 그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한 데 대한 모셰 자신의 열망과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백성이 자기 없이 좋은 땅으로 들어가게 될 그 날을 위해, 자기 백성을 준비시켜야 하는 자신의 급한 임무를 ‘자신이 거부당한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도록 했습니다.

모셰는 그 날에 대해 우려했는데,

그가 자신이 그들을 위해 거기 있지 않게 될 때 그 땅에서 있을 민족의 미래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드바림의 이러한 부분 전반을 거쳐 우리는 모셰가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갈 때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관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하쉠께서 ‘그들을 쫓아내라’라고 지시하신 이교도 민족들이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그들이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우상 숭배 방식을 배울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파라샤트 에케브에서 크게 강조되는 모셰에 대한 또 다른 이해로는, 그 땅 자체의 크고 풍성한 축복으로 인해 초래될 도전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 땅이 그토록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풍요가 있을 것에 대해, 사람들이 하쉠을 쉽게 잊어버리고 거만해져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못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모셰는 여기에서 ‘너가 너의 엘로킴 하쉠을 잊고 내가 오늘 너에게 명령하는 그의 명령들과 그의 법규들과 그의 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라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가 먹고 배부르며 너가 좋은 집들을 짓고 살며 너의 소떼와 가축 떼가 많아지고 은과 금이 네게 많아지며 네게 있는 모든 것이 많아지고 네 마음이 높아져 네 엘로킴 하쉠을 잊지 마라....그리고 너는 ‘내 힘과 내 손의 강함이 내게 이 부를 이루게 했다’라고 네 마음 속으로 말할 것이다.’

‘마치 파라오처럼 너는 너 자신에게 ‘하쉠? 하쉠이 누군가? 그건 모두 내가 한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모셰는 계속해서 ‘그는 너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그의 언약을 이 날과 같이 이루시기 위해 너에게 부를 이루도록 힘을 주신 분임을 기억하라’라고 말합니다.


땅을 찬양하는 모든 구절 중 하나의 짧은 구절이 모든 것을 간결하게 요약해 줍니다.

8:9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너가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며’라는 내용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이스라엘 땅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모셰가 예언한 ‘큰 위험’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 큰 위험을 초래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마음을 열어 보세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거룩하고 복되신 분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 분이 그들의 모든 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의 음식은 날마다 하늘로부터 공급되었고,

그들이 마신 물은 바위로부터 나온 기적인 ‘미르얌의 샘’으로부터였으며,

신성한 지시를 통한 바람을 따라 그들의 진영으로 온 메추라기로부터 고기가 제공되었습니다.

그들은 ‘영광의 구름’을 통해 태양빛으로부터 보호 받았고, 그들의 군사적 승리는 그들의 능력이나 결핍과 아무 상관 없이 하쉠에 의해서만 조정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쉠께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쉠과의 관계가 그들에겐 분명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하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간적 본성은 때로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불평에 굴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이 하쉠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쉠 자신이 그 분의 식탁에서 그들을 먹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 분만이 그들의 모든 필요와 그들 자녀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파라샤트 ‘베하알로텍하’가 있는 바미드바르(민수기) 9장에서 우리가 배운 이스라엘 자손들의 여정을 보세요.

그 여정에서 모든 남자, 여자, 어린아이는 그들을 데리고 다니는 분이 바로 하쉠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구름이 일어나 움직이면....모셰가 나팔을 불고 그들이 여정을 떠났다...’

‘구름이 멈추면...그들이 새로운 곳에서 멈추었다...’

때로는 하루, 한 달, 또는 일 년 동안, 그들의 여정과 일정은 전적으로 창조주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인간도 여정의 방향이나 결과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땅에 도착할 때는 어떻게 되나요?

이 특별하고 신성한 섭리는 중단됩니다. ‘한 낮의 밝음’처럼 분명했던 그들의 삶의 모든 뉘앙스 속에 있는 하쉠의 존재란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숨겨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모든 측면엔 매우 인간적인 역동성이 주입됩니다.

구절이 설명한 것처럼, 각 지파가 그 몫들을 받고 각 사람이 좋은 집을 건축하며 먹고 배부른다 했습니다.


이제 가장 깊은 방법으로 마음을 열어보세요.

위험한 점은, 사람들이 하쉠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 힘과 내 손의 강함이 내게 이 부를 이루게 했다’라고 마음 속으로 말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에게 무엇이든, 그리고 모든 것이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은 하쉠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한 낮의 빛’처럼 분명히 알 수 있을 때, 모든 것이 하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는 바다를 가르고, 만(만나)을 내리시며,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쓸어 모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밭을 경작하고 일구고 재배하고 자기 노동의 결실을 맺을 때, 이것은 사실 매우 큰 시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보며 ‘이것을 모두 내가 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취한 것들을 보라.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봐봐, 모두 내가 해냈어. 하쉠이 누구란 말인가?”

그러므로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마음을 열어보세요.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 또는 의학 쪽에서 발견이 이루어질 때, 치료제가 발명되거나 특정 분야에서 성공해 부를 이루게 되거나 군대가 승리했을 때,

여러분은 마음 속으로 이르길 ‘내 힘과 내 손의 강함이 이 모든 것을 이루고, 하쉠이 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속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하쉠한테 의존하지 않아. 이봐, 내가 혼자 한 게 안 보여?’

모셰는 이러한 위험을 예견했고, 바로 이것이 유대인이 배부르게 식사하고 나서 낭독하는 식후 축복, 비르카트 하마존의 계명에 대한 비밀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주 토라 부분에서 출처를 둔 ‘긍정 계명들’인 미쯔보트 아쎄이 중 하나입니다.


8:10에서는 ‘너는 먹고 배부를 것이니 너는 네 엘로킴 하쉠께서 너에게 주신 좋은 땅에서 그를 축복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이 축복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창조주를 인정해야 하는 인간의 의무적 표현이며, 모든 것이 하쉠께서 제공하는 것이고 그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어 보시면, 이것이 바로 식후 축복인 비르카트 하마존과 음식을 먹기 전에 낭송하는 관련된 다른 축복 사이의 주요 차이점입니다.

유대인들은 먹기 전에도 감사를 드리지만, 사람이 배부를 때는 하쉠을 잊을 수도 있고 더 이상 그 분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며, ‘내가 스스로 잘하고 있고 나는 내 힘으로 버틸 수 있다’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구절을 다시 본다면, 그 단순한 의미는 너무도 깊습니다.

‘너가 먹고 배부를 것이며...너는 너의 엘로킴 하쉠을 축복할 것이다...’

당신이 배불리 먹고 만족감을 느낄 때, 당신이 배부르고 자만이 그 배를 채우면 그 때가 바로 ‘내가 이 모든 걸 다 했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가 먹고 배부를 것이며...’그때가 바로’ 너가 너의 엘로킴 하쉠께서 네게 주신 좋은 땅에서 그를 축복해야 할 때이다.’

‘포만감’은 ‘배고픔’보다 더 큰 시험입니다.

하쉠을 기억하기 가장 힘든 때이지만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모든 것이 그 분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모셰는 이미 이 위험을 예견하고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습니다:

‘큰 하사품과 물질적 축복이 넘칠 것이니,’

‘너희의 시험은 너희가 이 하사품에 어떻게 반응할 지에 달려 있다.’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 창조주이심을 기억해야 하며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모두에게, 매일, 그리고 모든 곳에서 동일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번영은 그렇게 되갑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쉠임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광야 여정 동안,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쉠의 입’, 즉 ‘신성한 지시’를 통해 여정을 다니고 쉬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이 그 땅에 들어가서는 일상 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여정을 지속했는데, 표면상 언제 이동하고 멈추는 지에 대한 신성한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동반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했는데,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하늘에서 더 이상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징조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면 있었을까요? 그에 대한 깊은 진실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그들의 모든 여정이 ‘하쉠으로부터’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지시하고 인도하는 분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평생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는 듯이 마음을 열어본다면,

내가 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하쉠에게 의존할 땐 그 분을 기억하기 쉬워지지만, 내가 생계를 꾸리는 것, 모든 일을 하는 것, 모든 것을 하는 것, 집을 짓는 것,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 내 모든 힘과 강함을 드러내는 것 등은

‘그 때’가 바로 내가 누구로부터 지혜와 힘과 나아갈 방향을 받은 것인지 기억해야 할 때임을 보입니다.

그러고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이가 참으로 하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 믿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 되게 합니다.

유대인들의 위대한 스승인 ‘우리의 라브 모셰’는, 사람들이 하쉠으로부터 모든 것을 직접 받는 것을 보는 시대에 그들 자신을 위해 창조해내고 성공할 수 있는 ‘도구와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의 전환’을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에는 매우 위험천만한 것들이 ‘기다림’ 속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거만함과 자만, 자립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것들은 모든 것이 하쉠이고, 하쉠에 의한, 하쉠을 위한 것이라는 점과, 매 순간마다 우리의 성공에 힘을 주시고 우리의 생계와 축복을 제공하시며, 우리의 모든 걸음을 인도하는 분이 바로 그 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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