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샤트 니짜빔

샬롬, 새해 첫 머리인 로쉬 하샤나는 이번 일요일 밤 부터이며, 항상 한 해의 마지막 샤바트(안식일)에 읽는 토라 부분은 드바림(신명기) 29:9부터 시작하는 파라샤트 니짜빔입니다.


드바림의 마지막 네 부분, 이번 주 파라샤인 니짜빔과 남은 세 부분은 모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메시지이며 모두 그가 죽는 날에 한 설교입니다.

그의 말은 긴박함과 연민, 염려로 울려 퍼지며,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최대한으로 살 것을 권하고, 매 순간에 하쉠을 기억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의 길을 걸으며 그의 계명을 준수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이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항상 하쉠께로 돌아갈 것임을 예견합니다.


로쉬 하샤나의 전체 목표는 오직 하쉠만이 왕이심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실재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다른 이들과의 관계 등에서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바꿀 것입니다.

그러고나서 로쉬 하샤나의 성공적인 경험은 하쉠의 도우심으로 유대인들을 10일 간의 회개 기간으로 이끌게 되며, 강렬하고 깨끗하며 경이로운 욤 키푸르라는 대속죄일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파라샤트 니짜빔은 로쉬 하샤나라는 강렬하고 거룩한 날과 일치하는 신성한 합일을 반영케 하는 회상 기법입니다.

파라샤는 하쉠 앞에서 하나가 되어 말 그대로 ‘영원한 언약’을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 전체 앞에서 경이로운 모습으로 열립니다.


모셰의 비전과 외침은 모든 세대의 미래를 불러옵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길: ‘너희에게만 내가 이 언약과 저주의 맹세를 맺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하쉠, 우리의 엘로킴 앞 여기에 서 있는 우리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않는 자와도 맺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메시지는 개인적이면서도 우리 각자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쇼파르(양각 나팔)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고 왕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계산하고 정산하기 시작할 때, 이것이 하쉠 앞에 서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된 우리 상황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됩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이 차원의 현실을 통과하고 새로운 차원의 현실로 새해를 맞이하며 그 분의 언약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맺을 준비를 하고, 다가오는 해에 우리의 삶을 갱신할 준비를 하며 하쉠의 목적을 위해 헌신합니다.


로쉬 하샤나는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의 생일이며, 그의 창조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하쉠께선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를 위한 전세계적인 생일 잔치를 엽니다.

그렇지만 거기엔 풍선이나 장식들이 없는데, 하쉠께서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신 날의 의미 때문에 로쉬 하샤나는 심판의 날의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쉠께서 모든 인간 후손들의 행위를 검토하시고 각 개인과 국가들을 심판하실 때, 파라샤트 니짜빔에 자세히 설명된 언약이 우리의 약속의 갱신과 상호 간의 책임 및 잘못 선택한 것의 결과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지요!


하쉠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자 우주의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로쉬 하샤나의 경험은 우리를 희망적으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깨우며 우리가 우리의 날들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잠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쉬르 하쉬림(아가서) 5:2이 우리에게 일깨우듯, 우리의 마음은 깨어 있었습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순수하고 꾸밈 없는 ‘숨결’인 쇼파르의 소리는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내면으로 집중케 하는데 도움이 되어주고, 우리를 혼수상태에서 깨우며, 영은 그것을 듣고 소리 없는 말로 번역해 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으로 무엇을 하는 중인가요?

당신은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당신 인생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배의 선장이 예언자 요나에게 ‘왜 자고 있느냐? 일어나서 당신의 신을 부르라!’고 외친 것처럼 깨어납니다.


파라샤트 니짜빔의 이름은 ‘오늘 하쉠, 너희의 엘로킴 앞에 서 있는 것은’이라는 내용의 시작 단어인 ‘아템 니짜빔’에서 따왔습니다.

실제로 유대 현인들은 ‘오늘’이라고 하는 부분이 다름 아닌 로쉬 하샤나를 의미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서 있는’이란 의미를 지닌 니짜빔은 단순히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서 있는 것과 같이 서 있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빈둥거리거나 어슬렁거리거나 우울하거나 게으를 때가 아닙니다.

니짜빔이란 단어는 기둥이나 기념비를 의미하는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증언의 행위로, 무언가를 위해 확고하게 서 있는 것, 목적을 가지고 서 있는 것이란 개념을 전합니다.

하쉠을 우리의 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태세를 갖추어 섬길 준비가 되게끔 합니다.

하쉠께서 온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모든 창조물에 새로운 빛을 비추듯이, 그것은 매년 새로운 도전, 새로운 희망과 꿈, 새로운 시험,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

니짜빔 – 로쉬 하샤나는 서서 길을 가리키는 기둥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운명을 지닌 약속입니다.


바로 지금 로쉬 하샤나 전의 안식일이 얼마나 적합하고 완벽한지, 우리가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하쉠의 두려운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리의 토라 부분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위해 노력하라는 선택을 제시하는데, 삶과 좋음과 하쉠의 계명을 따르는 길, 그렇지 않다면 죽음과 악으로 넘겨지는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좋음, 죽음과 악을 네 앞에 주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은 하쉠, 네 엘로킴을 사랑하여 그의 길들로 가고 그의 명령들과 그의 법들과 그의 법규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너가 살로 너가 많아지며, 너가 그것을 차지하러 들어가는 그 땅에서 하쉠, 너의 엘로킴께서 너에게 축복을 주실 것이다.’


이번 파라샤는 또한, 필연적인 추방으로 이어질 아보다 자라(우상숭배; 알지 못하는 것들을 섬기는 것)의 미끼에 빠질 위험에 대한 경고와 회개와 구속에 대한 하쉠의 영원한 약속을 제공해 줍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완벽한 타이밍인데, 이 파라샤트 니짜빔에서 우리는 변명이나 궤변, 신학이나 철학, 유보나 전제 조건, 의제들이 없이 계명을 수행하는 것의 심오한 단순성, 그리고 접근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구절을 발견합니다.

개인의 의견과는 별개로, 토라의 완전한 접근성은 이 세상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견고한 현실입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이 명령은 너에게 놀랍지도 않고 멀지도 않다.’


로쉬 하샤나는 하쉠의 왕권이 세상에 계시 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를 시작으로 욤 키푸르까지 이어지는 기간의 기도에서 우리는 그 분을 ‘우리의 엘로킴’이 아니라 우리의 왕으로 칭합니다.

우리는 이 진실을 분명히 하고, 우리가 왕 앞에 서 있는 백성이며 우리의 귀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도록 소리를 내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방식을 바꿀 정도로 내면화 시킵니다.

왕이 지난 한 달, 엘룰 월 기간 동안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가 현장에 있던 때보다도 훨씬 더 가깝습니다. 바로 여기,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 법정이 열립니다.


하쉠께서 이 세상에서 그의 주권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늘이 갑자기 열리는 걸까요?

세상이 극적인 발전에 사로잡히는 걸까요?

하쉠께선 ‘정의의 속성’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을 왕으로 계시하시게 됩니다.

모든 인류를 심판하고 모든 사람에게 다가올 새해에 대한 포고령을 내림으로써 하쉠께선 그 분만이 왕이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우리가 명절 기도에서 ‘목자가 양 떼에 있는 자기 양을 살피듯 모든 사람이 당신 앞에서 지나갈 것입니다’를 음송할 때, 이 두려운 날에 인생의 모든 면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이 중 하나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대응할 지 아닌지를 제외한 모든 측면은 우리의 행동을 일치시킴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그 분께선 우리에게 맡기신 건데, 한 해 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만 가득 차 자기 자신을 속이고, 우리가 ‘책임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서 우리의 사치스러운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보지 못한 그 때에 적절하게 집중하고 로쉬 하샤나의 경험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다시금 바로잡을 수 있고 우리가 거기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내가 이해하고 그 분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바로 그 분의 주권의 계시이며 그 분의 왕국의 회복이 됩니다.


나는 그 분의 손에서 나의 운명, 나의 미래, 나의 성공이나 실패, 내 삶과 내게 소중한 모든 것이 그의 손에 달립니다. 우리는 그 분의 왕권을 받아들인다는 걸 어떻게 나타낼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강탈한 왕관을 그 분께 다시 돌려줌으로써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그 분께 왕관을 건네 줄 준비가 되면, 우리 자신을 위해 왕관을 탈취하려는 우리의 헛된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할 것이며, 우리는 자신을 재정비하고 새해의 빛을 받을 준비를 하여 하쉠께로 돌아가 생명책에 새겨질 준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파라샤트 니짜빔은 우리에게 강하고 단단하게 목적을 지향하는 바 대로 설 것을 지시합니다.

이 세상을 집어삼킬 악에 대해 집중하고 단호하게 맞서세요.

우리 자신과 서로를 위한 책임, 그리고 다음 세대에 하쉠의 언약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은 이번 주 토라 부분에서 우리가 새해를 맞이함과 함께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상기 시킵니다.

어떤 종류의 한 해가 우리를 기다리는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생명과 축복을 선택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가오는 5783년엔 온 세상에 빛과 사랑, 건강과 행복, 평화와 번영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책에 새겨지고 봉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축복을 위해 좋고 달콤한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명책의 페이지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샤나 토바 우메투카.(좋고 달콤한 새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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